석문정사(石門精舍)

▸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 287번지

이 정사는 선조(宣祖) 20년(1587)에 학봉선생이 건립한 정사로서 정면 4칸, 측면 2칸의 와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석문이란 정사
입구에 바위
두 개가 마주보고 서 있는데 골짜기가 휑하니 빈 것이 마치 문과 같다하여 이름 지은 것이다. 선생은 이곳 청성산
(靑城山) 중턱에 정사를 짓고
칠백리 낙동강 맑은 물과 자연의 경관을 벗 삼아 성리학 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력하였고, 퇴계선생의
학문 연원을 계승하였다. 만년에 이곳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자연과 벗하며 유유자적 하려던 선생의 뜻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정사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위치한 바위에 암각된 “石門”이란 대자는 선생의 5대손인 엄라(嚴懶) 김성월(金聖鉞)의 글씨이다.
정사에는 “석
문정사(石門精舍)”라는 현판과 선생의 시판 및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지산(芝山) 김팔원(金八元), 문봉(文峯)
정유일(鄭惟一) 공 등의 시
판과 밀암(密庵) 이재(李栽) 공이 지은 석문정사 중건기가 게판되어 있다.
이 건물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4호(1985, 8, 5)로 지정되었다.

 

교암대(橋巖臺)

▸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경광천 위

이 교암대는 학봉선생의 유촉지(遺躅址)이다. 경광(鏡光)앞에 흐르는 사천(沙川) 위 낙모봉(落帽峯)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사천내의 3, 4평 정
도의 바위에 가로로 “橋巖”이란 암각서(巖刻書)가 있으며, 바로 십여척 위에 있는 바위에 세로로 “橋巖臺”라는
암각서가 있다.  (金溪誌)

교암대(橋巖臺)

落帽峯前溪可憐    낙모봉 앞 시냇물은 정말 사랑스러우니
苔荒石老幾多年    이끼 끼인 오랜 바위 몇 년이나 지냈는가
山光蘊玉圍三面    산 빛은 옥 감춘 채 삼면을 둘려 있고
雲影兼天蘸一川    흰 구름은 하늘에 떠서 한 시내에 잠겨있네.
提柳愛看春濯濯    버들 둑엔 봄날이라 우거져서 보기 좋고
平沙喜得月娟娟    모래사장 비친 달빛 교교해서 맘에 드네
歸田偶卜林泉勝    시골에 와 우연히도 좋은 경치 얻었으니
身世居然地上仙    이내 신세 어언간에 땅 위 신선 된 것이네.

白首紅塵久自憐    흰 머리로 풍진세상 사는 것이 애처로워
願從眞隱送餘年    참다운 은자 따라 여생 보내기를 내 원하네
耕雲釣月金溪谷    금계의 물굽이서 구름 갈고 달 낚을 때
間柳尋花上洛川    낙동강 강가에서 버들과 꽃 찾아보리.
兩地烟霞同窈窕    양쪽 땅의 연기 노을 똑같이 그윽하고
一春光景更嬋娟    한 봄의 광경 다시 아름다울 것이니
閒來閒往無相阻    한가로이 오고 가서 서로 막힘 없으면
立地還成二老仙    그 자리서 두 늙은이 신선이 되리라.

(鶴峯文集에서)

위의 시는 학봉선생께서 교암대를 얻었다는 말을 듣고 송암 권호문(1532-1587) 선생이 축하하는 뜻으로 시를 지어 보내니 선생이
뒤늦게 차운하
여 지은 시이다.

 

침호정(枕湖亭)

부(府)의 서쪽 작현(鵲峴)에 있는 정자로, “좌로는 아호를 당기고 우로는 성산을 누룬다고 하였다.(左控鵝湖 右挹城山)” 습독(習讀)
을 지낸 유종
례(柳宗禮, 晋州人) 공이 지었는데, 공의 사위(婿)인 애경당(愛景堂) 김집(金潗) 공이 이어서 가지고 있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
永嘉誌)

 

풍뢰헌(風雷軒)
▸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학봉종택 내

이 정자는 학봉선생의 장손(長孫)인 단곡(端谷) 김시추(金是樞) 공의 강학지소로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양성을 위하여 세운 건물이
다. 지은지 오
래되어 퇴락한 것을 후손들의 극력주선으로 경인년(1990)에 중건하였다. 영남 북부지방의 일반적인 정자 양식으로
양편에 방이 각 한칸씩 있고
중앙과 전면전체가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팔작 지붕이다. 정자 정면에는
풍뢰헌이라 편액하고 전면 좌우에 “懲忿如摧
山 窒慾如塡壑” 이란 공의 좌우명(座右銘)이 게판(揭板)되어 있다.
만취당(晩翠堂) 권산립(權山立) 공이 기문을 짓고 족후손인 김시박(金時璞)
이 중건기를 지었다.

 

지수정(止水亭)

정근재(定跟齋) 김규(金煃) 공이 지었으며 지금은 폐허가 되어 전하지 않으며 그 위치조차 알 수 없다. (金溪誌)

 

여사헌(如斯軒)

금계리 경광(鏡光)의 사천(沙川) 위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교암대와 함께 동서로 서로 마주 대하고 있었다.
여사헌(如斯軒) 김세기(金世基) 공이
자질들의 학업을 위하여 지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金溪誌)

 

엄라정(嚴懶亭)
▸ 봉화군 춘양면 임기리

이 정자는 엄라(嚴懶) 김성월(金聖鉞) 공이 금계에서 봉화군 춘양면 임기리로 이거하여 만년에 미산(薇山)과 엄라(嚴懶)의 경승을
사랑하여 정
자를 세웠다.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隣) 공이 기문을 지었다. 지은지 오래되어 퇴락한 것을 무술년(1958)에 후손들에
의해 중건하였다.

 

옥계정(玉溪亭)
▸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 졸내

이 정자는 옥계(玉溪) 김명흠(金命欽) 공의 효행과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사림과 후손들의 정성으로 창건하였다.
중건 상량문은 진성인(眞城
人) 이충호(李忠鎬) 공이 짓고 족후손인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 공이 기문을 지었다.

 

동곽재(東郭齋)
▸ 구미시 선산읍 생곡리

이 정자는 동곽(東郭) 김기찬(金驥燦) 공의 우모지소(寓慕之所)이다. 지금의 건물은 신미년(1991)에 사림과 후손들에 의해 지은
건물이다. 중건
상량문은 류용우(柳龍佑, 豊山人) 공이 짓고, 기문은 전윤석(全胤錫, 沃川人) 공이 지었다.

 

유유헌(悠悠軒)
▸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150번지

이 정자는 유유헌(悠悠軒) 김진국(金鎭國) 공의 강학지소이다. 순조(純祖) 30년(1830)에 지은 건물로써 일반적인 정자 양식으로
양편에 방이 각
한칸씩 있으며 중앙과 전면에 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이다.
소암(所庵) 이병원(李秉遠) 공이 기문을 지었다.

 

소계서당(邵溪書堂)
▸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70번지

이 서당은 조선조 말 영남의 유림을 대표하던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 공의 강학지소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이 서당에는
소계서당(邵溪書堂)이란 현판과 공의 아호인 서산(西山)이란 현판이 게판되어 있다.
상량문은 염암(恬庵) 류연귀(柳淵龜) 공이 짓고, 기문은 족
질인 만산(晩山) 김정모(金正模) 공이 지었다.

 

모계정(某溪亭)
▸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번계

이 건물은 모계(某溪) 김홍락(金鴻洛) 공의 강학지소이다. 지금의 건물은 무진년(1988)에 사림과 후손들에 의해 지은 건물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상량문은 족손 김일대(金日大) 공이 짓고, 기문은 류시벽(柳時碧, 豊山人) 공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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